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의 변증법 (문단 편집) === 프로이트는 은유다 === > "프로이트는 전 대륙과 문명의 상상력을 선의로 사로잡았다. 비록 표면상 일관성이 없고 비논리적이거나 '빗나갔지만', 그의 계승자들은 신중한 논리와 실험, 수정을 함에도 비교할 만한 것이 없다. '''프로이트주의는 무척이나 비난할 만하지만, 프로이트가 현대 삶의 핵심적인 문제인 섹슈얼리티를 파악했기 때문에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 > - p.70 ,,(강조표시는 원서에 존재),,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 에서 포문을 열고, 케이트 밀렛이 《[[성 정치학]]》 에서 십자포화를 퍼붓고, 베티 프리댄이 《[[여성의 신비]]》 에서 지원사격을 하는 동안, [[정신분석학]]은 페미니즘 세력의 파상공세에 의하여 "반동적 사상", "여성억압과 성차별주의의 온상" 이라는 엄청난 악평에 시달렸다. 실제로 남근 선망(penis envy)과 같은 이론들은 여성들에게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져서 현대에는 후학들에 의해 다양한 개선과 수정이 모색되어 왔지만, 적어도 [[1960년대]]에 대해서라면 정신분석학은 정말로 엄청난 대중적 인기와 학술적 영향을 끼친, 그야말로 [[시대정신]]과도 같은 학문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페미니스트들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공격 역시 격렬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정신분석학의 가치를 인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어떤 '''통찰의 힌트'''를 얻기도 했고, 나중에 이들은 [[질 들뢰즈|들뢰즈]]와 가타리, [[자크 라캉|라캉]], 크리스테바 등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조류를 따라서 페미니즘과 정신분석학의 인식론을 연결해 갔다. 그리고 본서의 저자 파이어스톤도 정신분석학이 섹슈얼리티를 의제화했다는 점에서 호평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저자는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이 실상은 '''같은 시대적 배경과 뿌리를 갖고,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저자는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이 공유하는 "토양" 으로서 [[빅토리아 시대]]를 꼽고 있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을 만들기 시작하던 당시의 사회문화 속에는 페미니즘이 이제 막 뿌리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시절의 문학작품들에서도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여성상들이 종종 나타났는데, 이는 그 당시에 페미니즘이 정말로 중요한 의제로 여겨졌기 때문임을 의미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은 사회적 동요를 일으키는 사상으로 취급되었으며, 따라서 정신분석학은 '''페미니즘이 일으킨 사회적 동요의 문화적 산물'''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같은 역사적 현실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기에 페미니즘의 편에 섰고, 어떤 이들은 저렇게 생각했기에 정신분석학의 편에 섰을 뿐이지, '''동시대성이라는 역사적 조건'''만큼은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다양한 이론체계 역시, 저자는 그것이 "순수한 [[과학]]" 으로 자칭했기에 오해받을 뿐이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만한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은유의 한 종류로 다시 읽어보면 '''의외로 통찰력이 있는''' 지점들이 꽤 있다고 본다.[* 실제로 저자는 프로이트가 상정하는 가족구조를 은유로 삼아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교차성]]이라고 할 만한 상호작용을 5장에서 분석해 보이고 있다. 교차성에 관심이 있다면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보자. 무조건적인 [[부성애]]와 무조건적인 [[모성애]] 사이에서 아들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생물학적 [[핵가족]]이라는 제도 속에서 가족간에 존재하는 [[권력]]의 위계가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걸 굳이 초자아가 어떻고 하면서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이번에는 '''남근 선망'''을 보자. 어린 소녀는 아직 [[2차 성징]]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굴곡 있는 성인 여성으로서의 몸에 대해 이질감을 느낀다. 오히려 이들은 또래의 어린 소년들의 밋밋한 몸이 (어머니의 몸에 비해) 자신과 훨씬 비슷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걸 굳이 소녀들이 남근을 부러워한다면서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근친상간]] 금기'''를 보자. 누구나 자신보다 권력이 강한 자를 지배하고 싶은 생각은 한번쯤 하게 마련이다. 정말로 그렇게 하면 권력구조가 무너지기에 금지될 뿐이다. 그걸 굳이 부모에 대한 리비도적 욕망으로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런저런 복잡한 이론들 다 배제하고 이렇게 은유적으로만 읽는다면, '''의외로 그 설명이 전보다 훨씬 페미니즘에 가까워지는 걸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정말로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이 그렇게나 서로 비슷하다면, 어째서 정신분석학은 그 시대의 대중과 전문가들 모두에게 환영받았던 반면, 페미니즘은 모두에게 거북하고 불쾌한 "위험한 사상" 의 취급을 받게 된 것인가?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 역시 처음에는 거부당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쉽게 말해, "[[히익 페도|성(性)을 연구한다고? 그것도 다섯 살도 안 된 갓난쟁이 어린애들의 성욕을? 이런 미친 변태 소아성애자 같으니!]]" 취급을 한때 받기도 했다는 것. 그러나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여성들은 분명 섹슈얼리티에 관련하여 무언가 답답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고, 이들에게 '''누군가는 적절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수요'''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은 여기서 페미니즘과 결정적으로 달라졌다. 페미니즘은 "남성들이 당신을 억압하기 때문입니다!" 라면서 '''사회전복적인 메시지'''를 보내어 세간에 위협을 가한 반면, 정신분석학은 "자신의 성적인 에너지를 기존의 [[성 역할]]에 최대한 맞추세요" 라면서 '''사회순응적인 메시지'''를 보내어 세간을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불만의 원인을 사회에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돌리니, 억압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단비 같은 진단'''을 내리면서도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뿌듯함'''까지 동시에 주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의 이러한 측면을 "페미니즘이 갖지 못한 안전장치"(p.106)라고 말하며, 바로 이 차이 때문에 페미니즘은 당시 사람들에게 불편한 기분을 주었고 정신분석학은 당시 사람들에게 적극 환영받았다고 진단한다. 종합적으로 보아, 저자는 정신분석학이 그 이전까지는 금기시되던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공의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렸고, 은유적인 수준에서 가부장적 핵가족제 내부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권력 문제들을 내비쳐 보였기 때문에, '''그 담론적 의의까지 물리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의 문제는, 프로이트와 그 후학들이 끝내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분석에 반영하기를 거부하고 '순수한 과학' 의 환상만을 쫓았다는 점, 그리고 그 학문적 논리가 현실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곪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책임을 개인의 성생활에 돌린 채 숨기기 급급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한계점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물론 온당하지만, 저자는 어떤 방식으로 정신분석학이 페미니즘 혁명을 방해하는 도구로 오도되었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